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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사람의 가치 !!!!!!!!!!!!
- 이름 유종준
- 조회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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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
우리가 보석 하나를 얻었다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보석 하나 잃었다고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잘 만나서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고, 사람 하나 잘못 만나면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나는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새벽에는 이렇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 새벽 글을 시작합니다. 내가 인복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라 하면 직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꼭 그러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평소에는 그늘에 있지만, 내가 정말 외로울 때, “술 한 잔 할래?”하고 물었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올 수 있는 평범한 사람도 내게는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물불 안 가리고 뛰어오는 사람은 늘 그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상하좌우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과거에 비해 사람 대하는 방법이나 사람 보는 눈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리 직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허둥대지 않고, 고만고만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정성으로 대할 수 있는 요령 말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내세울 것이 뭐냐?” 하고 묻는다면 저는 딱히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직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빛나는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한 가지는 내세워보라 하시면 저는 ‘인간성’을 내세우고 싶습니다. “저 놈, 참 괜찮다”는 그 인간성. “저 놈이라면 그래도 믿을 수 있어”하는 그 인간성.
동물은 편안한 곳에서 배불리 잘 먹이는 것으로 양육이 충분하지만, 사람은 인간성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머리에 든 것이 많아도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이나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내 딸이 데려온 사윗감이 얼굴도 잘생기고, 집안도 좋고, 많이 배웠고, 능력도 있어서, 딸을 주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사윗감과 얘기를 나눠보니 인간성이 돼먹지 않았다면 그에게 나의 귀한 딸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 사람의 인간성을 보려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돈에 최고의 관심을 갖고 있으면 그는 온통 돈에만 신경을 쓸 것이고, 육체적인 쾌락이나 사행성 오락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그런 쪽에 온 신경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수 많은 관심 중에서 이왕이면 우리가 선한 것, 의로운 것, 고상한 것, 거룩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줄 아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실 한 가운데 무겁고 커다란 쇳덩이를 천정에 메달아 놓고 수십 명의 학생들로 하여금 종이를 돌돌 뭉쳐서 그 쇳덩이를 향해 던지도록 했습니다.
종이를 둘둘 말아 만든 가벼운 공으로 어떻게 커다란 쇳덩이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학생들은 쉬지 않고 그 쇳덩이를 향해 종이공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정말로 그 커다란 쇳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고 약하더라도 그것들이 모여서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처음에 그 쇳덩이가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학생은 강의실 안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종이공을 쉬지 않고 던지다 보니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게 되는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러 사람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것들이 모여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참 많은데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직장을 둔 사람이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는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어떤 때는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그 다리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톨게이트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 하고 지나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겁니다.”하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그 다리에서 “내 뒷사람 겁니다.”가 하는 말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작고 사소해 보이는 선의가 릴레이식으로 전달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선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똑같이 1달러를 내면서도 그 돈은 의무적으로 내는 통행세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선의의 표시가 되는 것이어서 “내 뒷사람 겁니다.”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밝은 미소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좋은 말이나 선한 행동을 거듭하면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선한 쪽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거듭하면 우리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악한 쪽으로 변해갈 것입니다.며칠 전에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호 선생님이 죽기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참말로 다시 일어나 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
작가로서 적지 않은 명예를 누렸던 그가 죽음에 임박해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마음껏 힘을 발휘하던 빛나는 시절이 아닌,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죽음을 멀리 남겨둔(?) 우리이기에, 우리 안에 아직 남겨진, 아직 때 묻지 않은, 순박한 마음과 선한 마음을 더욱 더 갈고 닦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태권도 수민체육관 유종준 배상